박찬욱 | 커트 보네거트를,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작품은 다 읽었는데 생각 밖으로 꽤 많이 번역돼 있어요. 그렇게 들으니까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커트 보네거트는 직접 영화에 큰 영향을 준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것은 또 사실이에요. 너무나 웃기고, 그런데 그 유머는 항상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한명 꼽으라면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가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어요. <제5도살장>이란 게 있는데, 보네거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데, 조지 로이 힐 감독이, 상당히 유능한 감독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잘못 만들었어요. 글렌 굴드가 음악을 맡았다는 게 기억할만한 정도이지. 영화로 만들기 참 어려운 사람이죠. <마더 나잇>이란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도 잘 못 만들어졌어요. 키스 고든이 만들었는데.
닉 놀티가 참 좋아하는 작가죠. 닉 놀티가 그 사람 영화에 두편인가에 나왔어요. 영화로 만드는 일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작품은. 왜냐하면 그 사람 소설의 재미는 자기 등장인물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 약간 비웃거나 냉소적인 코멘트를 하는 게 재미가 많이 오는데, 영화에선 그게 힘들기 때문에 안 만드는 게 좋겠지만, 그 사람의 농담하는 방식은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어요. 아까 지적하신 그 대사들이 보네거트를 생각하면서 만든 것은 아닌데, 그런 되지 않는 소리, 말 안되는 소리를 정색하고, 아주 심각하게 하는 것. 제가 보네거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아하는 뭐냐하면, 언젠가 한번 글도 쓴 적이 있는데, <제5도살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얘기에요. 어느 소설가가, 그러니까 보네거트 자신인데,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파티에 가게 됐는데, 어느 술취한 할리우드 제작자가 와서 ‘뭐 하시는 분입니까’ 해서 ‘작가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작품을 쓰고 계십니까’ 해서 ‘반전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제5도살자>가 반전소설이에요. 그랬더니 이 제작자가 ‘차라리 반 빙하 소설을 쓰지 그러십니까’ 그랬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빙하의 움직임은 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전쟁도 막을 수 없는 것인데. 반전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전혀 성사될 수 없는 헛소동이다, 라는 뜻으로 차라리 반빙하 소설을 쓰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는 거죠. 그런 것이 보네거트 식의 농담이에요. 그래서 많은 양심 세력과 작가들과 많은 사상가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무슨 행동을 하고 작품도 쓰고 했지만 전쟁이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잔인해지고 더 많은 수를 한꺼번에 죽일 수 있게 되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보네거트의 세계관은 참 어둡지만, 비관적이지만, 그렇게 웃으면서 흘러가는 그런 염세주의자의 세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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