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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유레카 특별증보판의 인터뷰 기사에서
Q. 무라카미씨가 지금까지 쓰신 단편중에 독자가 가장 놀란 것은 <패밀리 어패어>라는 작품이 아닐까요?
음, 그 작품에 대해서는 저도 약간 놀랐습니다, 쓰면서 말이죠. 자신도 그냥 쓰기 시작했는데, 그런 식의 느낌이 날 것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 작품은 [LEE]라는 여성지에 쓴 것이라서, 보통 때보다는 약간 가볍고 밝게 쓰려고 했던 겁니다. 저는 여성지에는 별로 소설을 쓰지 않거든요. 밝은 가정소설같은 것을 써볼까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죽 쓰고 보니, 어느샌가 그런 식으로 된 거예요. 저도 의외였죠.
Q. 그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무라카미씨는 초조해 하면서 이 작품을 쓴 건가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즐거워하며 썼던 것같네요.
그 작품은 즐거워하며 썼습니다.(웃음) 그러니까 말이죠, 거기에서는 TV홈드라마같은 형식만 빌려와서, 그 다음은 자유롭게 죽 써나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진행이 잘 이루어 졌고, 쓰면서 재미있었습니다.
Q. 그 작품에서 또 한가지 맘에 걸리는 것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 작품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하루키
그렇습니다. 그걸 쓰고 나서 느낌이 분명히 있었죠. 뭐라고 할까, 설명하긴 어려운데, 어떤 종류의 현실의 감촉이라는 게 있었죠. 이물질로서의 현실이라고할까..
Q. 무라카미씨의 소설이라면, 뭔가가 없어져서 시작되는 패턴이 많은데요, 예를들어 직장을 잃는다거나, 부인이 없어진다거나, 그리고 코끼리가 한 마리 없어진다거나 말이죠. 그런데 <패밀리 어패어>의 경우에는 이물질이 들어오고나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습니까? 이건 드문 경우 같은데요.
그렇네요. 그 작품이야말로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이 힘을 가진 예라고 할까요? 그 전까지 저의 소설에서라면, "나"와 여동생의 두사람의 이야기를 썼을 겁니다. 여동생의 약혼자는 등장하더라도, 이른바 상징적인 그림자같은 존재로밖에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하지만, [패밀리 어패어]에 있어서의 "와타나베 노보루"는 생생한 현실의 존재이고, 즉, 이물질인 샘이죠. 이름을 가지게 함으로 해서 이불질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서 "나"라는 주인공이 미묘하게 흔들리는데요, 그 부분이 제가 쓰면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던 부분입니다. 이건, 예로서는 좀 틀릴진 몰라도, 미도리와 "나"의 관계와 닮은게 아닌가하는 느낌입니다.
,<패밀리 어패어>라는 소설도 속편을 써서 늘려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어서 약간 써본 적은 있는데,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관뒀습니다. 좀 더 기다려 보는게 좋겠어요. 못쓸건 없지만.
Q.어머니가 등장해서, 전화로 상대 사람은 어디 대학을 나왔느냐 따위를 묻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것도 무라카미씨의 소설로서는 매우 드문 시츄에이션인데,
네, 드문 경우죠. 저는 그런 가정적인 부속물이란 건 우선 쓰지 않고 말이죠. 가정이라는 걸 그리는 경우가 많지 않죠.
Q. 그건 앞으로도 그렇게 될까요?
그거라면은?
Q 앞으로도 가정이라는 것은 별로 쓰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쪽이냐 하면 좀더 쓰고 싶단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라고 할까, 그런 이물질을 포함한 상황이라는걸 써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고, 조금씩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의 시야에 그런 것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소설 세계같은걸 만들어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슬슬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더 다양한 것을 대립시켜 보고 싶습니다. 저 자신에게 자극이 필요합니다. 전 말이죠, 어느쪽이냐 하면 비교적 한정시켜서 글을 써가는 타입입니다. 때문에 쓴다는 행위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는 면이 있지요. 조금씩 옆쪽이 보이게 된다고 할까요. 시선에 들어오는겁니다.
이건 경험적인 겁니다. 저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재다능한 작가가 아니라서, 경험으로밖에 배우지 못하고, 배우는데 시간도 매우 많이 걸립니다. 껍데기가 단단합니다. 하지만, 늦게나마 몸에는 붙어가는 것입니다. 첨에는 말이죠, 쓰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아마츄어였기 때문에, 무조건 보이는 것을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추구해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그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다'라는 식으로 결론지워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진 않지만, 그것이 원형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부분도 있고, 그것이 어느 의미에서는 개발도상중이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것은 경향성을 남긴 채 해방되서 퍼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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