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1일 목요일

스물아홉의 어느 봄날

타인과 다른 말로 얘기하라.
나는 소설을 쓰면서 곧잘 이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 나는 타인이 얘기한 것과는 다른 뭔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말로......





어릴 적부터 소설가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학생 시절에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도무지 순조롭게 써지지가 않아서 포기하고 이후로 남들과 다름없는 세월을 보낸다. 재즈카페를 열고 밥벌이를 하는 것도 하등 다른 이들이 사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야구 경기장의 구석에 앉아 있던 그에게 문득 운명이 찾아든다.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자신을 위해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길로 문구점에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서 가게로 돌아온다. 가게의 문을 닫은 한밤중, 글쓰기를 소망하던 학창시절의 부담감과는 전혀 다른, 편안한 마음을 갖고 부엌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아무 생각없이 원고지의 빈칸을 메워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매일 조금씩 단락을 지어가며 글을 쓴다. 문장이나 각 장이 짧은 것도 이런 시간의 제약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소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하루키는 서점에서 문예지를 뒤적이다가 이 잡지라면 뭔가 새로울 것 같아 『군조(群像)』 지에 글을 보낸다. 그런데 잡지에 실리는 것 외에 신인 문학상까지 받는 행운이 따른다. 다른 잡지였다면 실리지도 않았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더구나 상을 받고 "이게 소설이라면 나도 쓴다."는 악평을 받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소설을 쓰게 만든 내적 필연성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등단은 그에게 그 필연성을 확인하게 해준 계기만으로도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다. 만약 이 작품으로 상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영원히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또 썼다 하더라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과정을 밟았을 테니까."

전업작가 생활

서른두 살이 되면서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쓸 수 없을 정도로 써야 할 글이 많아진다. 카페 경영을 포기하고 치바의 한적한 시골로 잠적한다. 밤 10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한 덕에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산책하고 마당에 먹거리를 심고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고 생활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 외국여행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유명 작가가 된 후에도 원고를 쓰고 조깅을 하고, 하루 일과를 부지런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게 된다. 금욕적인 자기 관리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베일에 싸인 작가로 대접받는다.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소설들

단편소설 대부분은 제목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을 정하지 않고 제목을 우선 생각한 뒤 첫 장면을 쓴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더듬어 추구해가는 사이에 줄거리가 자발적으로 점점 퍼져나간다. 써나가는 사이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무언가가 그 모습을 보이는 자연방출적인 작업이 스릴 있고 흥미로워서 지금도 이 방법을 선호한다. 치바에서 장편을 쓰는 동안 하루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의 대부분의 장편이 늦가을에 쓰기 시작하여 겨울이 끝날 무렵에 탈고되었는데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가게를 계속했더라면 결코 쓸 수 없었을 작업이었다. 그는 이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처음으로 소설이란 단연 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란 소설을 때려눕혀 멋대로 주무르든가 아니면 짓밟히는 것밖에 없다고. 거기엔 융화나 협조의 정신은 없다. 백이냐 흑이냐 지느냐 이기느냐 밖에 없다."

그의 소설은 제목이나 우연히 떠오르는 몇 개의 광경으로 이루어진다

화자가 백화점의 불평불만 담당자라는 설정으로부터 하나의 단편이, 비내리는 비수기의 휑한 호텔, 개의 주검을 뜰에 묻는 정경, 마지막으로 한밤중에 점 비슷한 걸 치는 정경이 모여 하나의 소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텅빈 바, 매립된 바다, 초원, 개 한마리가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는 교외선의 역, 수도원이 있는 그리스의 외딴 섬, 터키의 황량한 벌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훗카이도의 목장 등이 모여 각각의 장편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루키는 상상해야 하는 것을 찾아내 그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의 상으로 응집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이야기를, 즉 소설을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문학이론이나, 변하기 쉬운 세상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작가는 그런 종류의 마술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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