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특집 대담>
1. 소중한 한국과의 인연
앞서(지난 호)에서는 무라카미 선생의 소설쓰기와 문학관 그리고 신간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중심으로 대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앞서의 총론적인 대담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보완적인 의미의 각론(各論)으로 대담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먼저 가벼운 화제부터 묻고 싶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열렬한 독자들이 많은 한국에 선생이 한번 방문하시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녀갈 생각은 없으십니까?
-저는 한국 독자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친근감을 늘 갖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국 사람들처럼 다정다감한 분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에 연구차 머물러 있을 때, 캠퍼스나 길거리에서 저에게 다가와 다정한 인사를 하는 건 거의 예외 없이 한국 학생들입니다. 뉴욕 거리에서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내 작품을 잘 읽었다고 다정하게 인사하는 한국인을 나는 수없이 만났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내 책을 읽거나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한국인보다 몇 배나 많을 터인데, 그들은 대부분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정감 있는 한국인들이 사는 나라에 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어쩌다가 가야할 시기를 놓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시기를 놓치다니요?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을 오는데 고민을 해야 할 사정이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한국 언론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곳 도쿄 주재 한국의 신문 방송사 특파원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서울 본사로부터도 저는 수없이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한번도 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한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견디기 어려운 매스컴의 취재 경쟁에 휘말릴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납니다. 저는 일본에서는 신문이나 TV방송 등 대중매체와의 인터뷰는 물론, 기자들과의 접촉도 피하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언론에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저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는 그만큼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는 글을 통해서 독자들과 교류하고 싶지, 대중매체를 통해서 교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내가 한국의 어떤 신문사 또는 방송과의 인터뷰를 한다면, 일본은 물론 한국의 다른 많은 신문 방송사들도 일제히 서로 인터뷰하자고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저는 사생활의 시간도 제약을 받게 되므로 일본에서도 문예지 같은 대상을 골라 문학적인 주제로 대담이나 인터뷰를 연 2회 정도 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 사정을 한국의 언론사에 미리 잘 알려주면 그들도 이해를 할 겁니다. 그리고 미리 예고하지 않고 살짝 다녀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짝 다녀갈 궁리도 해봤지만, 한국의 언론사 취재망은 철통같아서 언론사의 눈을 피해 다녀간다는 건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안 이후로는 단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식이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여러모로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마라톤의 경우, 한국에서도 1년에 스무 번쯤 열리는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그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2. 작가로서 터프해지기 위한 마라톤의 매력
한국에서 1년에 20여 회나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건 한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고 있는 저도 잘 모르는데, 역시 선생은 대단한 마라토너 같습니다. 그러면 마라톤 이야기를 잠깐 했으면 합니다.
선생은 건강을 증진하는 가장 좋은 실천 방법의 하나로서 마라톤을 하며, 남들은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마라톤을 오히려 즐기기까지 한다고 들었습니다. 보스톤 마라톤 같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대회에도 참가하시던데, 처음에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저는 해마다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하프, 풀, 이런 식으로 점점 달리는 거리를 늘려나갔습니다. 하지만 평소 연습을 많이 하면 처음부터 하프를 달리 수도 있습니다. 즐겁게 달리려면 15킬로미터 정도로 달리다가, 그 다음 몸 상태를 보고 속력을 내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힘껏 달리면 얼마 못 가서 힘들어지지요. 숨을 헐떡이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가 좋습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면 웃으면서 달리는 게 좋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고행을 하기 위해 달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라톤은 체력이나 주력(走力) 못지않게 인내력과 지구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선생의 경우 이제 나이가 50대 중반에 이르렀으면서도 마라톤을 계속하고 있는데, 더러는 그만두고 싶다든가, 달리다가 도중에 걸어간다든가 하는 일은 없는지요. 그리고 선생의 완주 기록은 어느 정도입니까?
-마라톤을 완주하는 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 재미를 붙이면 쉽게 그만둘 수가 없어요. 저는 시간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하는 운동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달립니다. 처음으로 마라톤 완주를 한 것이 1983년 호놀룰루에서였는데, 3시간 50분 정도였습니다. 최고 기록은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였는데 3시간 24분입니다. 제가 자랑할 만한 것은 기록보다도 오히려 지금까지 완주를 15번이나 했고, 더구나 모두 4시간 이내에 완주했다는 점입니다.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완주를 하고 날 때마다 “이봐, 대견해. 잘 달려줬어.”라며 제 다리에 한층 정이 갑니다.(웃음)
그처럼 마라톤을 완주하고 난 후의 기분을 소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청년이 전부터 좋아하던 여자에게 한동안 주저하다가, 어느 날 큰 맘 먹고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칩시다. 다행히 그 상대 여성도 좋다고 응하여, 청년은 어느 맑게 갠 일요일 아침에 그녀의 집 앞까지 그녀를 데리러 갑니다. 두 사람은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저녁 무렵이 되어 그녀를 다시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그리고 헤어지며 “잘 자”라고 말하지요. 그러면 그녀가 “오늘 참 즐거웠어. 또 만나.”라고 대답할 때 느껴지는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상쾌한 만족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담이지만 선생께서 한국인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낸 소설작품으로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들 수 있는데, 주인공 ‘뮤’는 재일교포여성이며 매우 멋진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떤 생각에서 ‘뮤’를 한국여성으로 설정했는지요?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해외에서 많은 한국인을 만났고 재일 한국인도 많이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재일 한국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사람 중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듯이, 재일 한국인 중에도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뮤’처럼 특이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을 때 ‘리얼리티가 없다’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뮤’와 같은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소설 속에 ‘뮤’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건 그녀 내부에 매우 깊은 몇 가지 이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과 왕성한 체력이 소설가의 기본 조건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글을 쓰는 작가치고 담배를 안 피우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날 담배처럼 건강에 해로운 건 없다고 하지요. 선생께서도 일찍이 체인 스모커로 담배를 무척 많이 피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담배를 어떻게 끊었습니까?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저는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한 후, 한 달 동안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한 달 동안은 꼼짝 않고 일을 안 해도 좋도록 사전에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하루에 무려 60개비 정도 피웠기 때문에 끊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 무척 힘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런 백해무익한 중독성 물질을 나라에서 제조와 판매를 허가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물론 금주법과 마찬가지로 금지해 봐야 어차피 몰래 만들고 숨어서 피울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3. 번역가로서의 하루키의 일면
선생의 거의 모든 작품이 30여 개 국에서 번역 출판되었지요. 그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에서 번역된 작품으로 꼽히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셈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번역된 작품 가운데, 선생께서 읽고 판단이 가능한 언어권에서의 번역에 대해 느끼신 점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번역이란 어디까지나 원문의 근사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사치에는 서로의 언어 사이에 가로 놓여진 골이 있게 마련일 테고 그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애정과 열의가 필요하지요. 애정과 열의만 있으면 대개의 문제점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는 내 번역자를 믿으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입니다만.
저는 제가 쓴 글을 원칙적으로 다시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된 것을 읽는다 해도 오리지널이 어땠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이므로, 영역본을 읽으면서도 “하하하, 이거 재미있는 걸”하며 대충 읽고 넘어갑니다. 그렇게 하는 게 제 건강에도 좋구요.
선생은 창작 못지않게 번역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명 번역가로 알려져 있는데, 번역할 도서의 선정 등 번역서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목할 만한 외국의 신간을 빠짐없이 읽습니다. 물론 내가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된 소설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지요. 많이 읽을수록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축적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출판사에 번역을 제의합니다.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오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는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열의가 느껴지는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레이먼드 카버나 팀 오브라이언 같은 작가는 제가 번역하기 전에는 사실 일본에 그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지요.
저도 때로는 번역 일을 해보지만 힘들고 답답할 때가 많고,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괴로울 때도 많은데, 선생은 번역할 때 그런 어려움이 없는 듯 합니다. 그 유명한 하루키 식 번역의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꼼짝 않고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여러 사람과 시끌벅적하게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번역은 못합니다. 그리고 체력이 강인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은 체력적으로 편할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마라톤이나 3종 경기를 계속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지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문장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번역에 익숙해지려면 그처럼 집중력을 기르고, 또 글에 대한 애착심을 갖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번역을 할 때 선생의 경우 어떤 단계를 거치십니까? 번역문의 퇴고랄까 윤문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요? 또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번역기법은 분야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저는 처음에 원서를 대충 읽고 어떤 느낌인지를 파악한 다음 단숨에 달리는 기분으로 번역을 해나갑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는 자세한 부분은 번역을 진행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훨씬 잘 될 때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번역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편집자가 싫어하고, 편집자가 싫어하는 번역자에게는 일이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퇴고의 경우는 번역문과 영어 텍스트를 비교하며 윤문한 후, 다음에는 영어 텍스트를 덮고 번역문을 일본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고쳐나갑니다.
선생은, 지난해 《해변의 카프카》를 집필하는 사이사이 틈을 내서 샐리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하여, 《해변의 카프카》와 함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는데, 그 의욕에는 정말이지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지치거나 피로를 느끼지는 않습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오래 전부터 번역하고 싶었던 작품이라서 참으로 보람을 느끼며 번역에 임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음미하면서 읽으며 매우 깊이 있고 무서운 소설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시각으로 번역하고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에 나온 다른 번역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무라카미 하루키 식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4. 하루키 소설의 비판점 및 짙은 성묘사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만연된 불륜 문제는 가족과 가정의 붕괴시대를 초래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의 하나라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육체관계가 없는 불륜도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하는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육체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육체관계가 있기 때문에 불륜이 성립되는 것이지, 육체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불륜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바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각기 배우자가 있는데 서로 마음에 드는 남녀가 자주 만나 환담을 나누고, 때론 바닷가나 산으로 가서 스포츠를 즐긴다든가, 그렇게 밀회를 즐기지만 육체관계는 서로 삼간다 - 이런 경우 한때 유행하던 말, 냉전시대에 NATO 사령부가 소련이 서방측에 도발을 할 때마다 공격은 안 하고, 말로만 큰소리친다고 해서 ‘No Attack Talk Only’라고 했던 것처럼, 남녀관계에서도 육체는 멀리하고 말로만 즐긴다고 해서 NATO 사랑이라는 말이 있었지요. 이럴 때 사람들은 ‘바람을 피운다’ ‘바람기가 있다’라고 하는데, 그런 바람기와 불륜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유도심문에 걸린 것 같아서 겁이 나는데요.(웃음) 어감 상 ‘바람기’는 가볍게 마음이 다른 이성에게 옮겨가는 상태로, 육체관계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런데 ‘불륜’이라고 하면 더욱 심각한 관계로, 어떤 상태가 뿌리채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아찔함 같은 예감이 듭니다.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을 ‘불륜소설’이라고 봐야겠지만,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여비서와 스캔들 소동을 일으킨 건, ‘불륜’보다는 ‘바람’에 가깝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도 “그쯤이야, 뭐 큰 문제 아니잖아”라며 관용을 베풀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선생은 “불륜할 권리쯤은 갖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가령 불륜을 한다면 어떤 심리상태가 될 것 같습니까?
-저는 분명하게 “불륜할 권리쯤은 갖고 싶다”라는 말한 적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불륜을 하고 있다거나 한 적이 있다는 말은 아니므로 제발 오해 없기 바랍니다.(웃음) 또한 지금 내가 하는 말도 일반론인데, 불륜을 할 경우 견디기 어려운 건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본래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불륜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이 하고 싶고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현실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불륜을 말릴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저는 도덕군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쾌락주의자도 아닙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일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리얼하고 쿨한 사람입니다. 아무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긍정과 부정의 양분법적 판단을 한다면 불륜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는 불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무척 많은 것 같은데, 처음부터 적당히 즐기겠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불륜에 큰 기대를 걸고 시작하면 실패할 경우가 많겠지요. 그렇지만 진정으로 깊이 좋아하는 사이라면 누구도 그걸 말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때로는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확률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나쁜 일은 아니며,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저는 진실로 상대가 좋아졌다면 불륜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일반론으로는 그렇지만, 한 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성급하게 불륜으로 치닫는 것은 금물입니다. 미리 심사숙고하고 행동에는 신중을 기해야겠지요.
선생의 작품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0여 년 동안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거의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스테디셀러가 되어 널리 읽혀지며, 선생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문학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선생의 거의 전 작품을 포함한 ‘무라카미 하루키 전집’이 발간되어, 외국 작가로서는 선두에 선 ‘베스트 또는 스테디셀러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 후진국이라고 할만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널리 독자를 확보한 선생의 작품에 대해 유일한 논쟁적 시비라고나 할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선생의 작품에 포함된 성적묘사의 포르노성 논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근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독일의 신문 《디·벨트(Die Welt)》에서도 현재 독일문단에서 일고 있는 《해변의 카프카》 등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성묘사의 과잉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일의 일부 비평가들이 내 작품의 부분적인 관능묘사가 포르노에 가깝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벨트지의 그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섹스, 섹슈얼리티에 관해 리얼하게 표현하는데, 그건 내가 흥미를 갖는 특별한 공간을 열어주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섹스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말하자면 그 특별한 공간의 입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섹스를 파악할 수 없는 그런 내면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섹슈얼한 것과 포르노적인 것 사이에는 가느다란 선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부분에서 아주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며, 어디에 그 선이 그어지는지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번역이 그런 것을 제대로 옮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가끔은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영어는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가끔 그런 것이 번역에서 제대로 살아났는지 검토하곤 하지만, 독일어나, 불어, 러시아어, 터키어로 번역된 경우, 나로서는 검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에 관해 방송에서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이 테마에 관한 논쟁은 무엇이든 환영하는 입장이다”라고 분명하게 태도를 밝혔습니다.
그 같은 논쟁은 일본에서 1987년에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이 발표됐을 때, 문학평론가 중 일부 소수의견으로 제기되었지요. 당시 선생께서는 ‘그 작품 속의 선정적인 묘사가 왜 시비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평론가들은 도대체 그들의 성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길래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요지의 통렬한 일격을 가한 후 잠잠해졌던 일을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서의 대담 질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극히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성적 묘사의 과잉성이랄까, 선정성에 대한 선생의 소신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개인적으로 섹스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의 하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열쇠와 같은 역할도 하지요. 또 어느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 속에 잠입해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호감과 칭찬의 극치점을 표현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섹스문제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그것을 빼놓고는 크고 중요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 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까지는 거의 성묘사 부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쓰는 이야기의 심도(深度)가 깊어져감에 따라서, 나는 섹스나 폭력에 관한 묘사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성문제를 정신적인 것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섹스는 육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통로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만 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제3자가 보기에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되기도 하겠지요. 그 때문에 쓴 소리를 하는 분이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성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나 느낌이 다를 수 있으므로 성묘사란 무척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요.
5. 신선·자연·미적인 성표현이란 정평
제가 기억하기로는 《상실의 시대》에서 처음 제기되었던 성묘사의 과잉성 시비에 대한 반응은 절대 다수의 평론가와 독자들이 그 작품의 성묘사는 너무 신선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었지요, 그 이후 그런 평가는 선생의 작품에 나타나는 성묘사에 대한 정설로 굳어져 있다고 생각되는데, 특히 이번의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여대생의 섹스 아르바이트 묘사는 싱싱하고 재미있고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는 일본의 섹스산업의 단면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기회에 일본의 거의 100% 가까이 자유화됐다고도 하는 섹스산업에 대해, 앞에서 지적한 《디 벨트》지에서도 언급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선생의 고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일본의 섹스산업은 아주 전문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함부르크에 갔을 때 그런 섹스산업 현장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1983년인가 섹스 비즈니스에 관해 무엇인가 쓰려고 했을 때였지요. 함부르크의 그곳은 완전히 밀폐된 곳 같았습니다. 권위가 지배하고 통제하는 곳이었으며, 경계가 분명한 구역 안에 제한되어 있었지요. 일본의 경우에는 훨씬 더 혼돈스럽고 더 부드럽습니다. 통제와 지배도 없기 때문에 섹스 역시 덜 위험합니다.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곳에 갑니다. 그에 대한 별다른 단속은 없습니다. 가령 당신이 일본인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아주 쉽게 그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섹스 숍뿐만 아니라 매춘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돈이 있으면 당신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건 전혀 기독교적이지 못한 태도겠지요.
내 생각에 섹스에 관한 한 우리 일본인에게는 별다른 죄책감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즈니스일 뿐이고, 그렇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사람들은 즐기기를 원하고, 그런 즐거움이 제공됩니다. 함부르크에 갔을 때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거기서 섹스는 죄책감과 관련된 느낌이었고 그런 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낙오자들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일거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그런 곳에 가지 않습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그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면서도 얘기하기를 꺼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6. 《해변의 카프카》 탄생 뒷 이야기
한국에서도 《해변의 카프카》는 발매 한 달 만에 15만 부를 돌파하고 어쩌면 금년 내로 30만 부는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성장소설로서, 예를 들어 샐리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경우는 있었지만, 어린이의 종착점이며 어른의 시작을 의미하는 순수한 인간의 원형(原型)으로서의 15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제가 아는 한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상상하기도 어려운 특이한 점이 이미 15세의 시절을 지난 독자나 앞으로 지날 독자 모두에게 큰 관심을 갖게 하는 건 아닐까요?
-《해변의 카프카》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좋은 소설,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큰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15세 소년 주인공이 내가 의도한 대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지요. 저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53세의 소설가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꽤 터프한 편입니다. 모든 사람이 제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더러는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비판받는 일에는 23년 동안 비교적 익숙해 있어서 끄떡없습니다.
《해변의 카프카》는 제목부터 너무 엉뚱하고 특이한데, 제목은 언제 어떻게 결정되었습니까?
-언제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제목을 정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는데, 문득 《해변의 카프카》가 머리에 떠올라서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제목으로 정했지요. 카프카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며 발음할 때의 느낌도 좋았구요. 《해변의 카프카》는 뭔가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후부터는 그 울림을 음미하며 주저 없이 제목으로 결정했고, 다른 제목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를 집필할 때, 매일 어느 정도의 양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밤에는 일찍 자고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때로는 3시에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만, 바로 책상 앞에 앉아 4시간에서 5시간 동안 줄곧 4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을 썼습니다. 낮에는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번역을 했고, 밤에는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다가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루 평균 400자 원고지 10매, 한 달이면 300매씩을 쉬지 않고 써서 반년 만에 1,800매의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후에 다시 6개월 동안 초고를 대여섯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며 몇 번이고 다시 쓰다시피 하여 200매를 줄인 끝에, 결국 1,600매로 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변의 카프카》가 완성되었습니다.
7. 하루키의 15세 때의 모습은?
《해변의 카프카》의 주요인물 중에서, 나카타 상이나 호시노 군 같은 인물은 너무 묘사가 생생하고 사실적이라, 실제로 모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 두 인물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선생이 창조해낸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느끼실 정도로 제가 소설 속에서 나카타 상과 호시노 군에 대해 리얼하게 그릴 수 있었다면, 그건 지금까지 제가 많은 종류의 사람을 진지하게 관찰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한 일은 요컨대 나카타적인 인물에 살을 붙이고 호시노적인 인물에 살을 붙인 것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어냈다고 하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고, 찾아냈다고 하면 찾아낸 것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소설적으로 찾아냈고 소설 속에서 만들어냈다는 단서가 붙어야 하겠지요.
《해변의 카프카》는 94년에 3부까지 나오고, 95년에 4부가 나와 완간된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 만의 긴 소설이고 대작이라고 하지요. 선생은 이 작품에 대해서 지금까지 23년간 선생께서 축적한 모든 역량을 기울여 완성한 가장 만족스런 작품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는데,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고심담을 듣고 싶습니다.
-《태엽 감는 새》는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4년간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서, 그 후 몇 편의 단편소설은 썼지만, 장편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지요. 또 처음으로 논픽션에 손을 대서 일본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 그러니까 옴 진리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언더그라운드》를 썼습니다. 그리고 또 소설을 쓰고 싶어서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완성했는데, 이 소설은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 정도의 작품이고 앞으로 좀더 본격적인 회심의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문체(文體)를 추구한 소설이었지요. 그래서 나는 한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문체의 쇼케이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고베 대지진을 주제로 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라는 연작소설집을 내셨지요. 그 소설 역시 다음에 발표할 본격적인 장편, 결국 《해변의 카프카》를 쓰기 위해 선생께서 처음으로 3인칭 주인공을 내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쓰고 난 후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주로 ‘나’라는 1인칭 소설만을 써왔는데, 앞으로 내가 써야 할 큰 작품은 3인칭을 적절하게 구사해서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7년 동안 제가 단편소설을 몇 편 쓰고, 《언더그라운드》라는 논픽션에 도전하고,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쓴 된 것도 결과적으로는 《해변의 카프카》라는, 내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설에 대한 정열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이요, 도움닫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생은 한국 독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다무라 카프카 군은 곧 나 자신이자 독자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라고 강조했는데, 한국의 독자들은 과연 선생의 15세 때의 모습이 과연 어땠을까 궁금해 합니다만.
-저의 15세 때를 회상하면 남다른 특이한 면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산과 들, 바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활기차게 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달리 독서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지요. 형제가 없이 외아들이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도 많았는데, 그런 고독이나 침묵이 전혀 불편하거나 괴롭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젊은이들 사이에 이념적인 투쟁이 한창 전개되고 있을 때라서,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용돈을 모아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몇 권씩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어렵다는 《자본론》 같은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처음에는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읽다 보니 그럭저럭 이해할 수도 있었지요.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도 거의 대부분 독파했는데, 이런 점이 보통 아이들과 다른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의 15세 소년들은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마 별로 읽지 않을 겁니다. 하루키 선생은 일찍부터 장래 대 작가가 될 싹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니까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무라 카프카 군의 남다른 어른스러운 성격이나 독서를 많이 해서 아는 게 많은 소년으로 그려진 것은 하루키 선생 자신의 15세 때 모습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이 소설의 다무라 카프카 군은 나의 15세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조금은 닮았을지 모르나 거의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줄곧 15세의 소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5세 소년이 등장한다고 해서 너무 계몽적이랄지 교훈적인 색채는 띠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생각하는 일,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는 일을 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주인공 소년이 사용하는 말이 너무 아이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다무라 카프카 군에게 ‘15세의 아이적인’ 말을 사용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어느 정도는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 15세 소년이기를 바랬습니다.
다음 작품의 취재를 위해 내일 멀리 아일랜드로 떠나는 선생께서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 대담에 응해 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직도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무척 바쁘신 듯해서 이만 대담을 접겠습니다. 아무쪼록 다음 작품이 더욱 대단한 명작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저의 마음으로부터의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문학사상사 (www.munsa.co.kr) 에서 가져왔습니다
2007년 5월 29일 화요일
무라카미하루키 -소설가가되어
소설가가 되어서
"기존의 작가 스타일과는 완전히 반대로 해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라는 말은 조금 단순하고 과격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단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당시 상당히 반항적인 심정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 몹시 건방진 인간이었습니다.
젊었고 오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필사적이었습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 어떻게든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제 나름대로의 문학 스타일, 생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축한 스타일 자체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한층 더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예전만큼 반항적이지는 않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동안 제 스타일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반항하려고 해도 반항할 만한 것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작가가 되었을 무렵과 비교하면, 일본 문단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무의미한 문학계 특유의 계율이 점점 사라지고, 시스템으로서의 융통성도 생겨났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합의가 세상에서 그렇게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변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가와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끈끈한 인간관계'만은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체념할 수밖에 없겠지요.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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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프로필
1949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하였으나 곧 효고현 아시야로 이주해서 10대시절을 보냄
부모님은 모두 국어교사.
196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화과에 입학.
중학교 시절에는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한 손에 사전을 들고 미국문학을 탐독게 되었다. 와세다 대학의 교정과 기숙사는 후에 <상실의 시대>의 무대가 된다. 대학 입학 후 학원 분쟁(전공투)을 체험한다.
전공투 체험을 겪으면서 형성된 하루키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쥐의 3부작과 <댄스 댄스 댄스>까지의 초,중기 작품속에 스며들어 있다
1971년
학생의 신분으로 요코와 결혼한다. 와세다대 수업시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계기로..
팬들이 그녀에 대해 묻자 하루키는 아내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할 당시에는 머리가 허리까지 왔는데 점점 짧아져서는 지금은 아주 짧아졌어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퍼머를 한 적도, 화장을 한 적도 없는 보기 드문 사람이예요. 데이빗 린치와 모짜르트 k491번과 함박조개와 연어껍질과 카슨 멕커러즈의 소설과 무라카미의 이전 차 '빨간 페가수스'와 포르쉐 911타르가톱(이건 비싸서 사 줄수가 없어요)을 좋아하고, 어릴때의 꿈은 닌자였대요'
하루키에겐 2세가 없다. 아이가 없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70년대의 환멸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인가하는 데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하루키는 밝혔다. 그리고 아내와 자신도 부모님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에서 오는 자신감의 상실이라고 한다
1974년
재즈 바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
초기 두 작품 이후에 피터 캣을 정리하고 전업작가로 나선다.
1975년
<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 : 부엌 테이블에서 매일 1시간씩 4개월에 걸쳐 쓴 그의 첫 소설
1980년
<1973년의 핀볼>발표(초기 3부작 두 번째 작품)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
1981년
<와세다 문학>의 편집위원이 되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화화 되었다.
오랫동안 경영하던 피터 캣의 문을 닫는다.
1981년
<사슴과 신과 성세실리아>(단편)
<꿈속에서 만나요>(에세이)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발표(초기 3부작 마지막 작품)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
1983년
<중국행 슬로보트>(오후의 마지막 잔디밭>등 7편수록)
<캥거루 날씨>,<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세이)
1984년
<반딧불, 헛간을 태우다. 그밖의 단편>
(<노르웨이 숲>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반딧불>등 6편을수록)
<파도의 그림, 파도의 이야기>(에세이)
<春上朝日堂>(에세이)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발표 :'다나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佐佐木 마키의 삽화에 의한 그림책)
<영화를 둘러싼 모험>(에세이-川本三卽와의 공저)
1986년
<빵집 재습격>(<1973년의 핀볼>의 쌍둥이가 재등장 하는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등 7편 수록)
<春上朝日堂의 역습>(에세이)
1987년
<노르웨이의 숲(한국명; 상실의 시대)>발표
6백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하루키 신드롬 출현. 하루키가 말하는 <노르웨이 숲>은 자신의 소설 분류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후에 미국에서 쓰게되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더불어 이 두 작품은 리얼리즘 소설이라 단언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비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노르웨이 숲>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해뜨는 공장>(에세이)
1988년
<댄스 댄스 댄스>발표(초기 3부작의 속편)
<스코트 피츠제럴드 북>(장편)
1989년
<春上朝日堂-하이호!>(에세이)
1990년
<먼북소리>(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외국 생활을 그린 여행 에세이)
<雨川炎天>(터키와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여행)
1992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미국 체류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발표
1994년
<슬픈 외국어>(에세이)
장편 <태엽감는 새 연대기>발표
1995년
인쇄매체 광고를 위해 광고문으로 쓴 <밤의 원숭이>발표
1996년
에세이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발표
1997년
<렉싱턴의 유령>발표
1999년
<스푸트니크의 연인> 발표
2000년
<신의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 발표.(자신의 고향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단편집으로 처음으로 3인칭이 시도 됨)
2003년
<해변의 카프카> 발표 (3인칭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
2004년
<어둠의 저편> 발표 (등단 25주년 기념작)
2005년
단편집 <도쿄 기담집>발표
음악 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도 없다>
(중요 작품만 모았고 년도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야 시립 도서관> 챈들러, 피츠제럴드, 스티븐 킹, 레이먼드 카버등 하루키는 미국의 현대 작가 11인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10대 시절 이 아시야 시립도서관에서 그들을 탐독했다. (그 11인의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다룰 예정이다)
<하루키상의 집에 있는 음악실> 벽을 가득 메운 LP들만 6천장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역시 재즈 음반이 제일 많다
< 그리스 미코노스 섬 전경>
이 섬에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고 그리스와 유럽의 여행이야기는 그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하루키의 힘의 원천 마라톤 풍경> 하루키가 다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체력이다.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뜨거운 욕조에 잠긴 채로 바늘 끝으로 발바닥에 부풀어오른 물집을 따낼 무렵에는, '자아, 이젠 다음 레이스에서는 더 분발해야지'하고 다시 마라톤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 <하루키 일상의 여백> 中 -
< 고양이 > 하와이의 카우카니 섬에서 만난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인사를 나누는 하루키상.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실린 사진으로 부인인 요코가 찍었다. 그는 옆집 고양이를 부를때도 옆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아닌 그 고양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을 지어서 몰래 부른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TV나 매스컴에 거의 등장하는 일 없이 그저 활자만을 통해서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에는 방문한 적도 없지만 외국인 작가로는 아마도 제일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손을 거쳐 나오면 아무리 허접한 소재나 이야기라도 비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재능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하나, 둘 읽기 시작하여 이제는 그가 내세우는 인물들의 짧고 가벼운듯한 대사들 속에서 무거운 의미를 제법 해독해 낼 줄도 알게되었다.
우상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히 우상이 될 만한 존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말한다' 시리즈를 발행하면서 하루키 그에게 더욱 다가가고자 한다.
"기존의 작가 스타일과는 완전히 반대로 해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라는 말은 조금 단순하고 과격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단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당시 상당히 반항적인 심정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 몹시 건방진 인간이었습니다.
젊었고 오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필사적이었습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 어떻게든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제 나름대로의 문학 스타일, 생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축한 스타일 자체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한층 더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예전만큼 반항적이지는 않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동안 제 스타일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반항하려고 해도 반항할 만한 것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작가가 되었을 무렵과 비교하면, 일본 문단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무의미한 문학계 특유의 계율이 점점 사라지고, 시스템으로서의 융통성도 생겨났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합의가 세상에서 그렇게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변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가와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끈끈한 인간관계'만은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체념할 수밖에 없겠지요.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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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프로필
1949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하였으나 곧 효고현 아시야로 이주해서 10대시절을 보냄
부모님은 모두 국어교사.
196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화과에 입학.
중학교 시절에는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한 손에 사전을 들고 미국문학을 탐독게 되었다. 와세다 대학의 교정과 기숙사는 후에 <상실의 시대>의 무대가 된다. 대학 입학 후 학원 분쟁(전공투)을 체험한다.
전공투 체험을 겪으면서 형성된 하루키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쥐의 3부작과 <댄스 댄스 댄스>까지의 초,중기 작품속에 스며들어 있다
1971년
학생의 신분으로 요코와 결혼한다. 와세다대 수업시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계기로..
팬들이 그녀에 대해 묻자 하루키는 아내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할 당시에는 머리가 허리까지 왔는데 점점 짧아져서는 지금은 아주 짧아졌어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퍼머를 한 적도, 화장을 한 적도 없는 보기 드문 사람이예요. 데이빗 린치와 모짜르트 k491번과 함박조개와 연어껍질과 카슨 멕커러즈의 소설과 무라카미의 이전 차 '빨간 페가수스'와 포르쉐 911타르가톱(이건 비싸서 사 줄수가 없어요)을 좋아하고, 어릴때의 꿈은 닌자였대요'
하루키에겐 2세가 없다. 아이가 없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70년대의 환멸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인가하는 데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하루키는 밝혔다. 그리고 아내와 자신도 부모님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에서 오는 자신감의 상실이라고 한다
1974년
재즈 바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
초기 두 작품 이후에 피터 캣을 정리하고 전업작가로 나선다.
1975년
<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 : 부엌 테이블에서 매일 1시간씩 4개월에 걸쳐 쓴 그의 첫 소설
1980년
<1973년의 핀볼>발표(초기 3부작 두 번째 작품)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
1981년
<와세다 문학>의 편집위원이 되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화화 되었다.
오랫동안 경영하던 피터 캣의 문을 닫는다.
1981년
<사슴과 신과 성세실리아>(단편)
<꿈속에서 만나요>(에세이)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발표(초기 3부작 마지막 작품)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
1983년
<중국행 슬로보트>(오후의 마지막 잔디밭>등 7편수록)
<캥거루 날씨>,<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세이)
1984년
<반딧불, 헛간을 태우다. 그밖의 단편>
(<노르웨이 숲>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반딧불>등 6편을수록)
<파도의 그림, 파도의 이야기>(에세이)
<春上朝日堂>(에세이)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발표 :'다나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佐佐木 마키의 삽화에 의한 그림책)
<영화를 둘러싼 모험>(에세이-川本三卽와의 공저)
1986년
<빵집 재습격>(<1973년의 핀볼>의 쌍둥이가 재등장 하는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등 7편 수록)
<春上朝日堂의 역습>(에세이)
1987년
<노르웨이의 숲(한국명; 상실의 시대)>발표
6백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하루키 신드롬 출현. 하루키가 말하는 <노르웨이 숲>은 자신의 소설 분류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후에 미국에서 쓰게되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더불어 이 두 작품은 리얼리즘 소설이라 단언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비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노르웨이 숲>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해뜨는 공장>(에세이)
1988년
<댄스 댄스 댄스>발표(초기 3부작의 속편)
<스코트 피츠제럴드 북>(장편)
1989년
<春上朝日堂-하이호!>(에세이)
1990년
<먼북소리>(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외국 생활을 그린 여행 에세이)
<雨川炎天>(터키와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여행)
1992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미국 체류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발표
1994년
<슬픈 외국어>(에세이)
장편 <태엽감는 새 연대기>발표
1995년
인쇄매체 광고를 위해 광고문으로 쓴 <밤의 원숭이>발표
1996년
에세이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발표
1997년
<렉싱턴의 유령>발표
1999년
<스푸트니크의 연인> 발표
2000년
<신의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 발표.(자신의 고향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단편집으로 처음으로 3인칭이 시도 됨)
2003년
<해변의 카프카> 발표 (3인칭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
2004년
<어둠의 저편> 발표 (등단 25주년 기념작)
2005년
단편집 <도쿄 기담집>발표
음악 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도 없다>
(중요 작품만 모았고 년도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야 시립 도서관> 챈들러, 피츠제럴드, 스티븐 킹, 레이먼드 카버등 하루키는 미국의 현대 작가 11인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10대 시절 이 아시야 시립도서관에서 그들을 탐독했다. (그 11인의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다룰 예정이다)
<하루키상의 집에 있는 음악실> 벽을 가득 메운 LP들만 6천장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역시 재즈 음반이 제일 많다
< 그리스 미코노스 섬 전경>
이 섬에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고 그리스와 유럽의 여행이야기는 그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하루키의 힘의 원천 마라톤 풍경> 하루키가 다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체력이다.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뜨거운 욕조에 잠긴 채로 바늘 끝으로 발바닥에 부풀어오른 물집을 따낼 무렵에는, '자아, 이젠 다음 레이스에서는 더 분발해야지'하고 다시 마라톤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 <하루키 일상의 여백> 中 -
< 고양이 > 하와이의 카우카니 섬에서 만난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인사를 나누는 하루키상.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실린 사진으로 부인인 요코가 찍었다. 그는 옆집 고양이를 부를때도 옆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아닌 그 고양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을 지어서 몰래 부른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TV나 매스컴에 거의 등장하는 일 없이 그저 활자만을 통해서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에는 방문한 적도 없지만 외국인 작가로는 아마도 제일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손을 거쳐 나오면 아무리 허접한 소재나 이야기라도 비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재능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하나, 둘 읽기 시작하여 이제는 그가 내세우는 인물들의 짧고 가벼운듯한 대사들 속에서 무거운 의미를 제법 해독해 낼 줄도 알게되었다.
우상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히 우상이 될 만한 존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말한다' 시리즈를 발행하면서 하루키 그에게 더욱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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